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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특별한 일이 없을 때에도 나는 바다로 갔다.

그 동안 몇 대의 카메라가 침수되고

몇 번 정도 사고를 당하는 슬픈 일도 있었지만

이따금 운 좋게도 마음에 드는 사진 몇장을 얻었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무엇인가 되어있을 줄 알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전시회를 열기로 한다. 

현실은 언제나 녹록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나는 바다로 갔다. 

​캐논갤러리 

2016.8.30~ 10.3

  날이 어둑어둑해지는가 싶더니 비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바다는 순식간에 변했다. 몇m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자 곧 방향감각을 잃었다. 리어카만 한 배에 침대 시트만 한 돛이 달린 작은 배를 탄 꼬마들에게는 쉽지 않은 순간, 모두 홀로 각자의 배를 몰며 배 길이의 반만 한 너울을 넘으며 제자리를 맴돌았지만, 누구도 포기하지 않았다. 겪어보지 못한 난관이지만 헤쳐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겁이 났지만 잘해내고 있는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비를 피할 곳도, 멈춰서 울 만한 여유도 없는 바다 한가운데에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나는 10대 시절의 몇 년을 바람으로 바다를 가르는 작은 배 위에서 보냈다. 

<OPTIMIST, 한겨레21 ‘김울프의 바다가 부른다’ 1081호>

  바람으로 바다를 가르는 것에는 즐거움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바람을 거슬러 올라갈 때 느껴지는 힘, 뒤집힌 배를 세울 때의 노력, 배 위에서 흘리는 땀과 달리면서 맞는 바닷물, 조류와 바람을 읽는 법, 푸른 하늘과 투명한 바다 빛, 규칙을 따르되 자신만의 길로 나아가는 것. 이런 것들을 직접 경험하고 나면 복잡했던 세상이 꽤 단순해지기 시작한다.큰 배가 명예를 가져다주지만 작은 배가 진짜 항해를 한다.

  스포츠가 가진 최고의 드라마는 무명의 팀이 최고의 팀에 도전하는 순간, 세계 최고, 최대의 요트대회인 아메리카즈컵 월드시리즈(34회)에 출전한 팀코리아. 국가적 지원을 받지 않은 개인(김동영 대표)이 구축한 팀은, 세계의 유명 팀들을 상대로 좋은 결과를 내고 세계적으로도 많은 이목을 끌었지만,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경기를 중도 포기했다. 운 좋게도 나는 팀코리아의 팀포토그래퍼로 활동했다.

  “이렇게 파도가 작은데 어떻게 여기에서 서핑해요?” 성급한 사람들이 비웃음을 섞어 묻는다. 하지만 호수같이 평온해 보이는 바다라고 해도 조금씩 출렁대고 있다. 바다에 코를 대고 파도를 보라. 파도가 얼마나 큰지.

  서핑 사진의 가장 큰 매력은 자신의 두 팔과 두 다리 이외에는 자신을 도와줄 어떠한 기계도 사용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자본력으로부터의 정치, 적당한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 환경은 내가 꿈꾸는 유토피아다.

  어떻게든 개인전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고심 끝에 상황을 밀어붙여 보기로 합니다. 고심 끝에 보유한 카메라 시스템을 해체, 사용하던 카메라와 렌즈를 모두 팔고 마련한 돈으로 한 달간 사진 촬영여행을 떠납니다. 캐논코리아컨슈머이미징 에서 카메라를 대여하고 , 아트카메라에서 하우징(Aquatech)을 대여해서 떠납니다.

 

  사실, 물속에서 사진을 찍으며 10년 정도 지나면 자연스레 무엇인가 되어 있을 줄 알았습니다. 고백하자면 시간이 흐를수록 (막연하고 성의 없지만) 알아서 술술 잘 풀리고, 버티기만 하면 상황이 조금은 나아질 것이라고 무심한 척 기대했습니다. 자연스레 전시회도 하게 되고, 책도 내고, 그러기 위해 세계 각지를 떠돌면서 사진을 찍는 삶을 기대했지만, 돌이켜 보면 저에게는 재능도, 노력도 부족했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내년에는 꼭 전시회를 해야지' 라는 마음을 가졌지만, 전시에는 돈이 필요하고 문제는 그럴만한 돈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니 제게 돈은 언제나 없었습니다. 열심히 벌지 않으니 열심히 쓸 자격이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전시회라는 것은 하고 싶은 것이어서, 논리적인 추론으로 '무언가 가진 것을 팔거나, 빚을 내는 수밖에 없다.' 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사용하던 장비들을 대부분 팔게 되었습니다. 카메라를 되파는 도중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게 과연 잘하는 짓인가?' 의문이 듭니다. 간이 조마조마해지고, 가슴이 콩닥콩닥 하지만, 그것을 작업 전 두근거리는 느낌이라고 의식적으로 착각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나는 바다로 갑니다.

 

* 캐논코리아컨슈머이미징 코리아에서 전시공간 지원, 홍보지원을 해 주셨습니다.

* 하와이 관광청, 마리아나 관광청에서 액자 비용의 일부를 지원해 주셨습니다.

  알로하. 가장 소중한 것을 상대에게 내어줄 수 있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그 따뜻한 마음. 나는 바다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얻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고,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는 것들. 

#Alohaeverywhere

A kahai : 친절 , 부드러움

L okahi : 통합, 조화로움

O lu’olu : 화합, 기쁨

H a’aha’a : 겸허, 겸손

A honui : 참을성, 인내

  바다는 지구의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한 채로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마음먹기에 따라 벽이 되기도 길이 되기도 하는 신비한 공간, 내가 바다를 자주 찾는 것은 변덕스러운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 낄낄대자 사소한 성취를, 한겨레21 ‘김울프의 바다가 부른다’ 1103호 >

  해가 뜨면 해를 보고, 달이 뜨면 달을 보고, 별을 보거나 파도를 보고, 구름이 지나가는 것으로 바람을 느끼고 바다에 몸을 담그고, 비가 오면 비를 맞는 것, 바다에서는 그래도 된다. 바다는 거대한 관광지라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전에는 알지 못했다. 오히려 성공하기 전에는 그러면 안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 경지에 도달하기는 쉬웠다. ‘그냥 하면 되는 것임을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걸까? 왜 모든 것을 배우고 나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아무도 막아서지 않았는데 나를 막고 서 있었던 건 나 자신이었다. 바다에 갈수록 많은 것이 변했다. 느긋한 마음은 아무 데에서나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 조류에서 벗어나는 법, 한겨레21 ‘김울프의 바다가 부른다’ 112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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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파도는 위험해, 더 크면 하게 해줄게, 그쪽으로 가지 마, 이쪽으로 나와, 다른 아이들이 있는 안전한 곳에서 놀아.” 소리치는 한국 부모들 사이에서 대여섯 살이 채 되지 않아 보이는 하와이 동네 꼬마가 들기도 버거운 서핑보드를 들고 바다로 향한다. 바로 옆에 있는 부모가 해주는 말이라고는 다음과 같았다. “네 보드는 네가 잡아, 파도의 피크 부분만 조심하면 생각만큼 무섭지 않을 거야. 겁먹지 마, 넌 할 수 있어.”

< 네 보드는 네가 잡아 ‘김울프의 바다가 부른다’ 109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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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핑의 첫걸음은 무심하고 가혹하다. 일상생활에서 잘 쓰지 않는 근육을 써야 하기에 완전히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생각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을 것이다. 창피함을 느끼지만, 사실은 누구에게나 서핑의 시작은 똑같다. 누군가의 조언이나 도움 없이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파도의 박자에 맞춰 일어서는 그 사소한 것을 해내기 위해 넘어지는 시행착오가 수백 번 축적될 때 스스로 작은 파도를 겨우 잡게 될 것이고, 그 순간 삶의 잊지 못할 즐거움을 선물받을 것이다.

< 좋은 파도 기다리는 호사로움, 작은 파도 겨우 잡는 즐거움 ‘김울프의 바다가 부른다’ 111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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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 점이 묘하게도 위로가 됐다. 내가 걸어온 길은 작은 발자국 몇 개, 그조차도 금세 파도에 씻겨나갔다. 그것이 아까워 사진을 찍고, 물속에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먼바다로 나와 홀로 둥둥 떠 있을 때면 나의 보잘것없음을 매번 느낀다. 스스로에게 떳떳할 만큼 남은 모든 것을 버린 적 없고, 그렇다고 이것을 놓아버릴 용기조차 없이 간신히 버티고 있는 모습이 바다에 비친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바다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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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라던 나의 길, 하지만 보잘것없는 재능이 느껴질 때면 마음이 헝클어졌다. 그럴 때면 바다로 갔다. 안 가면 후회할 것 같아서 빚을 내어서라도 충동적으로 찾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뚜렷한 직장도 소득도 없는 내게는 매 순간이 경제적으로는 결정적 위기이지만, 자유롭게 주어진 많은 시간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위기라고 합리화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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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업 전시 후, 취업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기 위해 면접을 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면도기로 스스로 하얗게 삭발을 하고 발리행 비행기 표를 샀다. 크리스마스 삼일 전쯤 ‘구늉빠융’ 이라는 서핑 포인트에서 이 사진을 찍고 끝도 없이 조류를 따라 망망대해로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몇 시간이 지나자 저체온증과 탈수 증세가 왔다. 멀어지는 해변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울다가 그 모습이 바보 같아서 그만두었다. 나를 구할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조류를 거스를 수 없어 떠내려온 방향대로 계속 가보기로 마음먹고 고개를 하나 돌아 다른 해변으로 수영해서 나왔다. 다시는 서핑 사진을 찍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이틀 뒤인 크리스마스에 마땅히 할 게 없어서 다시 바다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었다. 사고뭉치에게 인생이란 포장을 뜯기 전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는 선물상자다 

<YES24 라이프 토크 ‘ 당신에게 크리스마스의 추억은?’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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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내일의 파도가 온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의 파도는 ‘한번'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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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지의 끝, 바닷가에 가면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마음이 잘 통했다. 나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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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최연소’나 ‘모험’ ‘꿈’ 같은 거창한 단어를 쓰며 성공을 구걸했다면 좀 더 유명해지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워졌겠지. 하지만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다. 오늘같이 바람이 불어올 때면 그때의 낭만의 향기가 코끝에 스치는 것 같다. 경기도 화성 전곡항에서 제주도, 부산, 울릉도, 독도를 거쳐 강원도 양양의 수산항까지, 물도 전기도 부족한 원시적인 생활, 바람이 불어올 때 달리지 않으면 바람이 불지 않을 때에는 달리고 싶어도 달릴 수 없는 작은 돛단배에서 박효준, 임재환과 보낸 67일의 시간, 사진과 영상을 잘 찍어두고도 팔릴 만한 대의나 명분을 붙이지 않아 결국 팔리지 않았다. 그래서 좋았다. 언젠가는 편집을 완료하는 것이 인생의 숙제다. 

< 낄낄대자 사소한 성취를, 한겨레21 ‘김울프의 바다가 부른다’ 110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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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바다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로 카메라를 잃을 때마다 마음은 더 단단해 졌다. 지금까지 총 다섯대의 카메라를 바다에서 잃었다. 그렇다. 내게는 카메라 후원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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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에서 항해할 때 똑바로 가고 있는지 어떻게 확인하는 줄 아세요? 사람의 시야는 생각보다 넓어서 앞만 보고 갈 때는 방향이 조금 틀어져도 잘 알아차리지 못해요. 차선이라도 그어져 있고 좁은 길이라면 몰라도, 먼바다에선 앞만 보고 달리면 계속해서 앞으로 가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죠. 먼바다에서, 안개가 가득한 날, 주위에 지형지물이나 지표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는 그 자리에서 멈추면 안 돼요. 그러면 정말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게 돼요. 방향감각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계속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고, 계속 한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앞이 아니라 뒤를 봐야 해요.”

< 뒤를 돌아봐요 잘 가고 있어요, 한겨레21 ‘김울프의 바다가 부른다’ 1119호 >

  큰 흐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언젠가부터 내 삶의 중요한 지표가 되었다. 먼 길을 돌아가는 것이 어쩌면 내게는 가장 좋은 길일 수도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먼바다를 건너 바다에 왔다. 아마도 지금 이 순간이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일 것이다.

< 조류에서 벗어나는 법, 한겨레21 ‘김울프의 바다가 부른다’ 1123호 >

이 실험이 성공으로 끝나는지 실패로 끝나는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중요한 점은 제가 바로 시도했다는 것입니다. 

< 스스로 항해하라,  TED x Sinchon, 2011 >

  첫 개인전시 오프닝, 뒷정리를 마무리하고 갤러리에서 쓰는 글.

  저는 최근 두 가지의 모험을 하고 있습니다. 모험이 상품처럼 팔리는 시대에 모험이라는 단어가 듣기 불편하실 수도 있겠지만, 해보지 않았던 (무모하지만 해보고 싶은) 일들을 모험이라고 두고, 모험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첫 번째는 머리를 기르는 일이고, 두 번째는 개인 전시회를 하는 것입니다. 해본 적 없어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시작하고 나니 잘했다는 생각이 가끔 스치기도 합니다. '모험을 하는 것 대신에 다른 유용한 것들에 집중했다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자주 하지만, 아무래도 지금 이쪽이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렴요.

  저는 많은 것들의 차이로부터 아름다움과 매력을 느낍니다. 저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것이 특별하고 유일한 것이 되었으면 하지만, 아쉽게도 거의 모든 것들은 대체가 가능 합니다. 가려던 식당이 문을 닫으면 다른 식당으로 가는 것처럼, (우리는 늘 답을 찾을 것입니다. 늘 그래 왔듯이) 더 좋은 대안은 곳곳에 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선택할 수 있고 선택의 여지가 넘쳐나는 시대에, 수많은 해야 할 일과 만나야 할 사람을 미뤄두고 오늘 이 자리에 저를 보러 오셨다는 것은 흔한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함께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제 사진을 보고 많은 사람이 묻습니다. '어디서 찍은 것이냐, 어떻게 찍은 것이냐, 누구를 찍은 것이냐, 무엇을 찍은 것이냐, 언제 찍은 것이냐' 를 물어보지만 '왜 찍은 것인가?' 를 물어보는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저는 왜 찍는 것일까요?

_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에게, 아니, 세상에 잘 보이고 싶었습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알게 되고, 알던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 주는 사진은 마법 같은 주문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사진을 촬영하지 않았다면 이처럼 많은 사람을 알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정말로 좋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기분이 들었을 때, 그 사람들을 한군데에 모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을 모아 잔치를 하면 좋겠다고, 서로를 소개해 주고 싶다고 생각이 든 순간, 전시를 꼭 하고 싶은 기분에 휩싸였습니다. '카메라와 가진 것을 모두 팔아서라도 해보고 싶다.' 문득 든 생각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해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느낌.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진들을 걸고, 제가 좋아하는 음료와 음식을 준비하고, 제가 좋아하는 향을 피우고,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불러모은다면 제 삶에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 되지 않을까? 그 순간이 바로 지금입니다.

  눈치를 보는 순간 찬스는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개인의 기호보다 타인의 눈치를 먼저 보는 법을 배우는 이상한 나라에서 태어났지만, 사진은 제게 찬스를 잡는 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한 기회로 알게 된 여러분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저를 빌미로, 여기 걸린 이 사진을 빌미로 새로운 누군가를 알게 되기를, 알던 사람들과 더욱 돈독해 지기를.

  삭막한 육지의 끝에는 늘 바다가 있었고, 바다 한가운데에서는 육지의 끝이 그리웠습니다. 아무래도 바다보다 바닷가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곳에는 항상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알게된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이 전시로 알게 된 사람들을 모아 섬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한 빌미로 10월 3일까지 매일 압구정 한복판의 바닷가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겠습니다. (PM 3-8)

 

그리고 나는 바다로 갑니다. 바다에서 만나요.

가장 뜨거운 마음을 담아.

김울프 드림.

[ 향기 ]

 

  1. 최근엔 갤러리에 가기 위해, 하루에 두 번 택시를 탄다. "택시에서 좋은 향기가 나네요, 방향제를 어떤 걸 쓰신 건가요?" 대만의 한 작은 찻집에서 나던 티트리 부류의 향이었다. "아니에요, 조금 전에 여자분이 내리셨는데 그 향인가 봐요." 향기란 참으로 신기하다. 아주 잠깐 살짝, 어딘가에 닿거나 머릿속에 스쳐 지날 뿐이다.

 

  2. 전시를 준비하면서 '향기'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전시 직전 야단법석을 떨었다. 국내에서는 구할 수 없는 향. 하지만 내 전시회라면 꼭 그 향이어야만 했다. 원래는 불을 붙여 쓰는 스틱형을 사용했지만, 스틱형은 건물 규정상 불가능했고, 액상형은 인화성 물질로 분류되어 기내 반입뿐 아니라 수하물로도 반입할 수 없었다. '배를 타고 일본에 다녀와야 하나?' 우여곡절 끝에 원하던 향을 구해 전시장 곳곳에 둘 수 있었다. 향기가 옅어지는 느낌이 들면, 몇 방울씩 전시장 바닥에 떨어트리는 것이 나의 일과 중 하나다.

 

  3. 에어컨을 종일 틀어, 건조해서인지 생각보다 빨리 향이 닳는다. 전시가 시작된 지 보름 정도가 지났고, 보름 정도가 남았다. '그때까지 이 향으로 버틸 수 있을까?' 한 달 하고도 사일, 나는 그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보며 하루하루 마음을 다해 살아내고 있다. 카메라를 팔아 액자로 만들어 전시회를 열고, 그 사진을 액자값 정도로 팔면 카메라를 살 수 있을 것 같았던 계획은 바보 같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나는 왜 매번 나중에서야 깨닫는 걸까?'

 

  4. 오늘은 종일 '향기'에 대해 생각했다. 어쩌면, 향이란 모든 곳에 닿지 않아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렇지 않게 닿지 못하고 흐지부지 날아가 버리면 또 어떠리. 향기란 오래 머물면 골칫거리가 되는 법. 아무래도 적당한 선에서 적당히 흐릿하게 사라지는 편이 모두에게 좋을 수도 있을 것이다.

  5. 이대로라면, 보름쯤 후엔 전 재산을 털어 만든 액자들 중 상당수가 상자에 쌓여 방 한편에 쌓여 짐짝 취급을 받을 것이다. 나는 누구에게, 무엇을 보여 주려고 이렇게 애를 쓰고 모든 것을 만들어놓고 걸어 놓았나. 생각해 볼수록, 이렇게 제 멋대로인데 속상하거나 서운할 자격도 없을 것이다.

 

  6. 생각지도 못한 선물 같은 사람들, 말뿐이거나 겨우 그 정도인 사람들 속에서 기쁘고도 서운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아마 전시를 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기분일 것이다. 그 기분도 조금 있으면 닳거나 흐릿하게 날아가 버릴 것이다.

 

  7. 시간은 흐르고 향기는 아주 잠깐, 어딘가에 닿거나 스쳐 지나가고 있다.

전시는 10월 3일에 끝난다.

[별을 보려면 불을 꺼야 해요 ] 

겨우 작은 일을 해내기 위해서 많은 큰일들을 포기하는 것. 행복했습니다. 

하루하루 기쁜 마음을 가득 안고 갤러리에서 보낸 시간들.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저 먼 곳으로부터 많은 해야만 하는 일들을 뒤로하고

작은 별들을 보기 위해 찾아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나는 바다로 갔다

2016년 8월 30일 - 10월 6일 
캐논갤러리 (강남구 선릉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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